[뉴스]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가우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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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Focus Spain | 작성일 | 21-03-30 11:56 | ||
라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은 100년 넘게 공사중 스페인 제2의 도시인 바로셀로나(Barcelona)는 17세기에 건설된 항구 도시다. 이 도시는 수도인 마드리드하고는 색깔을 확연히 달리한다. 카탈루냐(Cataluña)만의 언어를 쓰고 민족성이 결합된 자기 고유의 독특한 문화를 유지한다. 관광도시로 유명한데 특히 안토니오 가우디(Antonio Gaudi i Cornet, 1852∼1926)의 건축물은 탁월한 명소다. 성 가족성당(La Sagrada Familia), 카사 밀라(Casa Mila, 1905~1910), 카사 바트요(Casa Battllo, 1905~1907)는 건축 문외한의 눈길도 절로 끈다. 이 중에서도 성 가족성당은 여행자들의 필수 방문지다. ‘사그라다 파밀리에’는 ‘성가족’이라는 의미로 예수 그리스도, 마리아, 요셉을 가리킨다.
원 설계자는 가우디의 스승인 비야르로 성 요셉 축일(1882년 3월 19일)에 이 성당을 착공했다. 그러나 건축 의뢰인과 의견 충돌로 중도 하차해 이듬해부터 가우디(당시 31세)가 맡게 된다. 가우디는 1926년까지, 총 12년간을 오로지 이 성당에만 매달렸다. 이 성당을 완공하기 전, 그는 전차에 치여 갑작스럽게 세상을 떴다. 그가 사망했을 땐 ‘예수 탄생’ 파사드, 종탑 한 개, 4개의 탑, 지하 납골당만이 완성된 상태였다. 그날 이후 공사는 끊임없이 진행되어 가우디가 죽은 지 100년(2026년)이 되는 해에 완공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 성당은 천천히 자라나지만, 오랫동안 살아남을 운명을 지녔다”는 가우디의 생전 얘기가 이뤄질 것 같다.
구리 세공인의 아들로 태어나 성당 입장료가 비싼 편이지만 매표소는 늘 장사진을 이룬다. 매표요금은 완공을 위한 기부금 형태로 쓰인다. 먼저 엘리베이터를 타고 맨 꼭대기 층으로 올라가 400여개의 회오리 계단을 따라 내려오면서 구경하면 된다. 가우디의 유해는 지하 박물관에 있다. 1852년, 가우디는 타라고나 주에 있는 레우스(Reus)에서 구리 세공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가우디는 어릴 적부터 ‘솥 대장간의 음악소리’라는 아버지의 대장간에서 일을 했다. 불 다루는 법, 구리 제련법, 무쇠 녹이는 법 등을 배웠는데 이 작업은 후에 창조적인 건축가로 성장하는데 밑거름이 됐다. 1869년(17세), 가우디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형이 이미 수학하고 있는 바르셀로나로 터전을 옮겨 건축학교에 입학한다. 고향과는 달리 큰 도회지인 바르셀로나에 적응하기 어려웠지만 그 시절, 많은 자극과 동기를 얻었다.
1874년(22세), 바르셀로나의 유명한 건축학교(Escola Superior D'arquitectura)에 입학하게 된다. 그러나 그의 특이한 창조성은 혹평을 받았다. 고정관념 가득 찬 교수들의 눈밖으로 벗어났다. 우여곡절 끝에 간신히 졸업장을 받게 된 가우디에게 당시 교장 로젠은 “제군들, 내가 오늘 이 졸업장을 천재에게 주는 것인지 아니면 바보에게 주는 것인지 모르겠네”라고 비꼬았을 정도다. 또 영국 작가 조지 오웰은 가족 성당을 두고 “무조건 새로운 것과 기괴한 것을 추구한 가우디의 의식적인 노력은 천박하기만 하다”라고 경멸했다. 가우디는 늘 말이 없고 허름한 차림새에 이상한 실험들을 일삼았기 때문에 평생 괴짜라는 꼬리표를 안고 살아야 했다. ‘귀족적이면서 천박한, 댄디(dandy)이자 방랑자, 박식하지만 오락가락하는, 기지가 넘치지만 재미없는 사람’으로 인식되었다. 근대건축의 거장 르 꼬르뷔지에(Le Corbusier, 1887~1965)만이 그를 천재라고 칭찬했다. 사후 30년 후인, 1960년대부터 그는 인정받기 시작했고 현재는 바르셀로나를 빛내고 있다.
카사 밀라~카사 바트요~구엘공원 바르셀로나에는 성 가족 성당 말고도 가우디의 모더니즘 건축의 최고로 꼽히는 카사 밀라가 있다. 산을 주제로 디자인하고 석회암과 철을 이용해 만들었다는 독특한 건축물로 파도가 치는 것 같은 곡선이 인상적이다. 카사 바트요(2005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는 요셉 바트요 카사노바가 그라시아 가에 위치한 자신의 집을 가우디에게 보수해 달라고 요청해 새롭게 단장된 저택이다. 바다를 주제로 디자인한 이 건물은 도자기 타일과 유리 모자이크가 아름답다.
구엘공원(Parc Guelld, 198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은 가우디와 구엘 백작의 합작품이다. 가우디의 후원자였던 구엘 백작은 이상적인 전원도시를 만들 목적으로 바르셀로나의 펠라다 지역의 땅을 매입했다. 구엘은 가우디에게 영국의 전원도시를 모델로 하고 그리스의 팔라소스 산과 같은 신전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 이 곳에 60호 이상의 전원주택을 만들어 스페인 부유층에게 분양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공원 부지는 돌이 많은 데다 경사진 비탈이어서 작업에 어려움이 많았다. 그럼에도 가우디는 자연스러움을 살리기 위해 땅 고르는 것도 반대했다고 한다. 그는 이 단지를 위해 무려 14년(1900~1914)이나 매진했지만 결국 자금난 등으로 미완성했다. 1922년, 바르셀로나 시의회가 구엘 백작 소유의 이 땅을 사들였고, 이듬해 시영공원으로 탈바꿈시켰다.
자연 친화적인 구엘 공원의 건축물 구엘공원은 세계에서 가장 매력적이고 독특한 공원 중 하나다. 바르셀로나를 여행하는 사람은 꼭 방문해봐야 하는 곳으로 손꼽힌다. 멀리 지중해와 바르셀로나 시내가 한 눈에 보이는 언덕 바지에 구엘 공원이 있다. 초콜릿을 닮은 듯 한 돌기둥, 과자의 집처럼 생긴 건물이나 반쯤 기울어져 어딘가 불안해 보이는 인공석굴, 계단 위에 타일로 만들어진 도롱뇽, 기념품을 파는 건물 등. 가우디만의 색깔을 분명한 건축물이 모여 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관심이 많았던 구엘 백작의 요청으로 만든 도리아식 기둥도 눈길을 끈다. 녹색 식물들 사이로 자연스럽게 들어앉은 독창적인 건축물들이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 한마디로 자연을 거스리지 않은 채 만들어졌고 사방팔방 시내가 조망되고 있어 가슴 속까지 시원해진다.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는 점까지 더하면 두말할 필요 없이 행복한 공간이다. 단, 과거 가우디가 살았던 집은 박물관으로 유료다. 가우디가 사용했던 침대, 책상 등 유품과 데드마스크(dead mask)가 전시되어 있다. 가우디가 직접 디자인한 독특한 가구들이 감상의 포인트다.
Travel Data 찾아가는 방법:대한항공, 아시아나 항공 등 직항이 운행된다. 13~14시간이 소요된다. 다른 유럽 도시를 경유해 가는 방법도 있다. 파리에서 1시간40분, 런던과 프랑크푸르트에서 2시간 20분이 소요된다. 현지교통:바르셀로나는 규모가 커서 대중교통을 필히 이용해야 한다. 지하철이 편리하다. 도심이 복잡하므로 1일권을 사서 무제한으로 이용하는 것이 좋다. 또 T10 티켓을 사면 여럿이 같이 쓰기에 좋다. 같은 존(Zone)에서는 시내 대중교통 편을 모두 이용할 수 있다. 몬주익 언덕을 오를 때는 푸니쿨라를 이용하면 된다. 한국처럼 역마다 시니어 안내원들이 있으니 잘 묻고 구입하면 된다. 여행자를 위한 호호 버스(Ho-Ho Bus, Hop-On Hop-Off Bus)를 이용하는 것도 좋다. ‘호호버스’는 빨간색 선, 파란색 선 그리고 초록색 선이 있다. 원하는 여행지를 구경하고 다음 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음식 정보: 바닷가 근처라서 해산물 요리가 발달되어 있다. 보케리아 시장에서는 해산물을 구입해 즉석 요리를 먹을 수 있다. 기다리는 사람이 너무 많을 때는 근처의 레스토랑을 이용해보자. 흥정으로 절반짜리 해산물 요리를 먹을 수 있다. 스페인에서 가장 유명한 빠에야나 간식용 타파스 집은 매우 흔하다. 저렴하고 푸짐한 음식은 레스토랑의 점심때만 등장하는 ‘오늘의 메뉴’를 선택하면 된다. 숙박정보:관광도시라서 물가가 비싼 편이다. 고급 호텔 가격은 1박당 50만원 이상 한다. 이럴 때는 아파트나 한인 민박, 호스텔등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아파트는 1박당 10만원 정도 예상하면 된다. 시차:한국보다 7시간 늦다. 전압: 220v, 50Hz 화폐:유로화 통용 날씨정보:지중해성 기후는 생각보다 푸근하다. 그러나 예고없이 비가 내릴 수 있으니 비옷이나 우산은 꼭 챙겨서 외출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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