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중앙은행, 2019년 성장 전망치 상향…올해 전망 높아진 주요국은 미국·스페인뿐 ▲ 스페인 국기와 유럽연합(EU)깃발 /사진=게티이미지뱅크 7일(현지시간) 스페인 중앙은행(방코 데 에스파냐·Banco de Espana)이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2.4%로 높였다. 지난 2월 말 전망 때 2.2%로 예상했는데, 석 달 만에 높여 잡았다. 스페인 잠재성장률은 1.5%다. 올해 들어 호기롭게 성장 전망이 올라간 나라는 미국과 스페인뿐이다.
스페인 중앙은행이 긍정적인 숫자를 발표하던 7일, 프랑스와 함께 '유럽 빅2'이자 유럽 경제 엔진이라는 독일에선 중앙은행(도이체 분데스방크·Deutsche Bundesbank)이 자국 성장률 전망치를 1%포인트나 끌어내렸다. 가장 최근인 지난해 12월 발표한 2019년 전망치는 1.6%였다. 분데스방크는 올해 초엔 성장률 전망을 하지 않았다.
방코 데 에스파냐가 내다본 올해 스페인 경제는 '미·중 관세 전쟁' 시대에 국제통화기금(IMF)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같은 국제기구를 비롯해 우리나라 등 각국이 줄줄이 전망치를 끌어내리는 분위기라서 더 튀어보인다. 하루 전인 6일 국제통화기금(IMF)이 올해 미국 성장률을 2.3%에서 2.6%로 두 달 만에 높여 잡긴 했지만 자국 중앙은행(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이 올린 건 아니다. ◆ 야유 받던 '돼지 국가(피그스·PIIGS)' 유로존 구원투수 된 스페인
요즘 유럽에선 스페인 경제가 돋보인다. 2008년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GFC) 이후 스페인이 2015년부터 3%대 성장을 하기도 했지만 이때는 다른 나라들도 함께 경제가 회복세였다. 그런데 요즘 유럽은 미·중 무역 갈등과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탈퇴), 이탈리아 부채 위기 때문에 골치다.
작년 유로존(EU 28개 회원국 중 유로화를 쓰는 열여덟개국)이 1.9%성장했을 때 스페인은 2.5%, 독일은 1.5%였다. 올해 1분기 유로존 경제가 0.4%성장했을 때 스페인은 0.7%, 독일은 0.4%여서 글로벌 금융시장에선 "독일이 아닌 스페인이 유럽 경기 둔화를 막았다"는 평을 했다.
이런 호평은 한때 '유럽 삼총사(프랑스·독일·스페인)'였다가 유럽 돼지 국가들, 즉 '피그스(PIIGS·포르투갈 이탈리아 아일랜드 그리스 스페인)'라는 야유를 받으며 체면을 구긴 지 거의 10년 만이다. 스페인은 2010년 부동산시장 버블(과도한 호황)이 꺼지면서 지방정부 부채·저축은행 부실이 불거져 글로벌 시장에서 국가신용등급을 강등당했다. 2012년엔 결국 EU에 구제금융을 받을 지경이어서 당시 6월 글로벌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스페인 국가신용등급을 중상위 등급(A3)에서 한번에 3단계나 내려 중위 등급(Baa3·투기등급 직전)을 매기기도 했다. 2013년 12월에 스페인이 구제금융 관리체제를 끝내면서 경제가 좋아졌나 했더니 이번에는 정치 혼란이 닥쳤다. 2014년부턴 집권당이던 보수 계열 국민당(PP당) 부패 스캔들이 전국을 휩쓸기 시작했는데, 때마침 스페인 경제에서 5분의 1을 차지하는 카탈루냐 지역이 분리 독립 움직임을 본격화하면서 정국이 더 어수선해졌다.
◆ 올해 1분기 정규직, 통계치 작성 이후 최다…올해 선방 비결은? '내수'
스페인 경제가 올해 유독 잘 버티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스페인 중앙은행은 '내수'를 꼽았다. 오스카 아르세 방코 데 에스파냐 경제통계국장은 "올해 경제가 예상보다 높은 견실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는 긍정적 평가 배경으로 '강한 내수'를 이유로 들었다.
일각에서는 스페인 최저임금이 빠르게 오르고 법인세도 인상되는 추세를 지적하기도 한다. 지난해 스페인은 올해 최저임금상승률을 22.3%로 정했다. 하지만 방코 데 에스파냐는 지난 7일, 2021년 실업률 전망치를 기존 12.1%에서 11.8%로 낮췄다.
스페인 통계청(INE)은 올해 1분기 스페인 경제가 0.7% 성장을 한 건 기업 투자가 늘기도 했지만 기존 임금 인상에 힘입어 소비가 늘어난 결과라고 분석했다. INE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새 일자리 증가 폭(작년 1분기 대비 59만6900개)이 2007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고, 1분기 기준 정규직 계약자 수는 1212만4000명으로 통계치 작성 이후 가장 많았다. ◆ 보수·진보 정당 불문한 '눈물'의 구조 개혁…관광·제조업 활기
물론 스페인이 깜짝 성장을 한 건 아니다. 글로벌 금융시장에선 스페인 경제가 2015년을 전후해 꾸준히 좋은 성적을 낸 배경에 대해 세 가지를 꼽아왔다. 하나는 2011년 이후 '기준금리 인하'로 대표되는 유럽 중앙은행(ECB)의 경기 부양 정책이다. 그런데 이건 스페인뿐 아니라 유로존 전체에 해당하는 얘기다.
두 번째는 3대 부문(금융·노동·공공재정) 구조 개혁이다. 2010년 재정 위기 당시 집권당은 노동사회당(PSOE)이었다. 진보 성향 정당이었지만 노동 개혁(해고 요건 완화·단기 근로자 확대 정책 등)과 긴축 정책에 들어갔다. 지방 정부마다 너도 나도 공항·신도시 개발을 하는 동안 부실 대출 등으로 덩달아 약해진 저축은행을 통폐합했다. 전국 총파업에 이어 2011년 5월 마드리드에서 이른바 'M-15운동'(反긴축 시위)이 확산된 가운데 호세 사파테로 총리(5대 총리·2004년 4월~2011년 12월, PSOE당)가 9월 의회를 해산해 조기 총선을 할 정도로 진통을 겪었다.
그래도 2011년 11월 조기 총선에서 보수당인 국민당(PP)이 의회 과반수 의석을 확보하는 승리를 거두면서 구조 개혁이 이어졌다. 마리아노 라호이 총리(6대 총리·2011년 12월~작년 6월, PP당)가 이끄는 내각은 2012년 노동 개혁을 더 밀어붙였다. 기업이 9개월 연속 적자를 보거나 미래 재정 위기가 예상될 때도 해고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임금을 물가에 연동해 올려주지 않아도 되게 만들었다. 물론 50인 이상 대량 해고 땐 기업이 '법인세'를 더 내게 했고, 1년 이상 근무한 직원들에 대해서는 매년 20시간 직무 관련 교육훈련에 참여할 수 있도록 회사가 '유급 휴가'를 주게 했다. 내수를 살리기 위해 2014년엔 소득세를 내렸다. 집집마다 가처분소득(번 돈에서 세금을 내고 난 후 소득)을 늘려주면 가계 소비가 늘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기업이 투자·고용을 확대하는 효과를 노려 법인세도 내렸다.
스페인 자동차제조협회(ANFAC)에 따르면 2016년 스페인 내 자동차 생산량(289만대)이 2008년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독일 폭스바겐·다임러, 미국 포드, 프랑스 르노 등 주요 자동차 회사들이 스페인에 공장을 두고 있는데, 스페인에서도 자동차 산업이 경제(국내총생산(GDP) 기준)에서 10% 선을 오가는 주요 산업이다.
스페인 경제 회복은 '관광업의 힘'도 컸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스페인 정부는 '스페인을 즐기세요(Saborear Espana)'라는 슬로건을 걸고 관광산업 활성화에 나섰는데, UBS 투자은행 등 글로벌 금융시장 추산에 따르면 관광업은 스페인 경제에서 11~12%를 차지하는 주요 산업이다. 글로벌 경기 침체 속에 당장은 빛을 보지 못했지만 작년 1월 수도 마드리드에서 열린 세계 관광기구 회의에서 2017년 외국인 관광객 수(잠정 집계)를 기준으로 스페인은 처음으로 미국을 제치고 관광 대국 2위(8200만명, 1위는 프랑스 8800만~8900만명)에 올랐다.
무디스는 지난해 4월, 성장 전망과 금융 분야가 개선됐다면서 스페인 국가신용등급을 Baa2에서 Baa1로 상향했다. 노동시장 개혁과 은행 구조조정 성과를 들어 2014년 3월 Baa3에서 Baa2로 상향한 지 4년 만이다. 여전히 스페인은 정치 혼란(과반 의석 확보 정당 부재·카탈루냐주 분리독립 요구)과 경제 문제(두 자릿수 실업률과 높은 비정규직 비율(올해 1분기 기준 각각 14.7%, 25.88%))가 산적해 있다. 하지만 당분간은 관광업과 제조업이 경제를 끌어당길 것으로 글로벌 금융시장에서는 전망한다.
◆ '독일 비켜'…산체스 총리, 프랑스와 손잡고 '유럽 삼총사' 재신입 노려 ▲ 유럽의회 선거 다음 날인 지난 달 27일(현지시간),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오른 쪽)가 프랑스 파리를 찾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왼쪽)과 유럽통합 방안을 논의했다. /사진 출처=newsbeezer.com 경제가 잘나가면서 요즘 국제 무대에선 5월 유럽의회 선거 이후 스페인이 'EU 주도 세력'으로 부각되는 모양새다. 페드로 산체스 총리가 이끄는 PSOE는 4월 스페인 총선에 이어 5월 유럽의회·스페인 지방선거에서도 전부 승리했다. 산체스 총리는 '유럽 통합'을 강조하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비슷한 입장이기도 하다. 둘은 독일과 달리 EU 차원의 실업 기금이나 화석연료에 대한 EU '녹색세' 도입을 주장한다. 스페인과 프랑스는 독일이 EU 집행위원장으로 밀고 있는 만프레드 베버 후보에 반대하기로 뜻을 모으기도 했다. 집행위는 EU 행정부 기능을 하는 핵심 기관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