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스티브의 스페인 문화 프리즘] 사람답게 살아 그대, 살라망카
작성자 Focus Spain


살라망카 신대성당 입구 장식
[자유기고가 김덕현 Steve] 아빌라에서 숨고르기를 마치고 북쪽으로 한 시간 남짓 더 올라가 본다. 가는 동안 끝없이 펼쳐지는 지평선을 바라보니 오래 전 추수가 끝난 밀밭의 밑동이 지나가는 바람을 붙잡듯 휑댕그런 소리를 낸다. 여전히 대낮엔 뜨겁다 느껴지는데도 스산한 마음이 드는 걸 보니 이곳도 처서의 기운이 감도는 가을을 맞이하는가 싶다.

마음 속에 떠오르는 여러 감정을 덜어내 가며 마침내 도착한 곳은 대학과 인문학의 도시인 살라망카다. 날씨가 쨍한 날, 도시에 들어서자 마자 멀리 살라망카의 대성당이 반겨준다. 또르메스 강을 가로지르는 수많은 다리들 가운데 가장 유서 깊은 로마 다리를 거닐며 1세기 이곳을 지배했던 로마인들을 잠시 떠올려 본다. 길이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지나간 저들의 정복역사는 이천년이 지난 지금에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전쟁이 아닌 사람으로서의 길은 무엇으로 올려 놓을 수 있을까. 다리 끝에는 로마를 상징하는 늑대가 형태만 남겨져 있다.

눈을 들어 올려다 보니 사암의 건물들이 곳곳에 펼쳐져 있다. 누르스름한 색과 붉은 기운이 맴도는 걸 보니 과연 금빛의 도시 La Ciudad Dorada 라 불려질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리에 커다랗게 괴어 있는 벽돌에 남들처럼 약간 힘을 주어 문질러 보니 모래가 손에 묻는다. 여기저기 건물마다 보수 공사가 수시로 이루어지는 이유였다.


살라망카 신대성당 정면 파사드
살라망카의 대성당은 특이하게도 구 대성당과 신 대성당 두 개로 이루어져 있다. 구 대성당은 12세기부터 14세기에 이르러 완공됐는데 로마네스크 양식과 고딕 양식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후 페르난도 2세에 의해 16세기부터 또 하나의 대성당이 올려진다. 후기 고딕 양식부터 시작해 르네상스에 바로크 양식까지 아우르는 신 대성당 역시 200여년의 세월에 걸쳐 18세기에 완공되면서 살라망카는 한 도시에 두 개나 되는 대성당을 가진 곳이 되었다. 사이 좋은 형제마냥 서로 이어져 붙어 있는 대성당은 고국의 동생을 떠올리게 한다. 언제 부터인가 무소식이 희소식으로 그저 잘 지내고 있으려니 하지만, 웬지 이번엔 안부 문자라도 한번 보내봐야 될 것만 같다. 

신대성당의 정면 파사드에는 그 큰 규모에도 빠짐없이 촘촘히 세공장식에 혼신의 힘을 다한 장인의 숨결이 담겨 있다. 그는 누구를 위해 이런 역사를 이루어냈을까. 신을 위하기 이전에 신의 사랑으로 사람에게 감화를 주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이런 숭고함을 느낌과 동시에 옆면 대성당 입구에 장식된 우주인과 아이스크림을 쥔 용 문양은 보는 순간 피식! 하고 웃게 되어 엄근진에서 빠져나와 살가운 사람 냄새나는 친밀감을 준다.


살라망카 대학교 정면 파사드
수많은 관광객들의 방문이 이어지는 곳임에도 살라망카는 다른 도시에 비해 유난히 젊은 학생층을 많이 보게 된다. 실제 이 도시의 인구 다섯 중 하나가 대학생일 정도로 활기찬 곳이기도 하다. 세계에서 3번째로 오래된 살라망카 대학교는 오랜 역사뿐 아니라 유럽에서 최초로 대학universidad 라는 이름을 사용한 대학교로도 유명한데, 작년에 개교 800주년을 맞이했다. 참고로 우리나라의 성균관대학교는 조선 태조 7년인 1398년에 설립, 올해로 창립 621주년이 된다. 스페인어 교습책에서도 살라망카는 스페인어를 배우려면 반드시 와야 하는 학교로 소개가 되어 있어 (수도 마드리드 친구들은 코웃음을 치겠지만) 실제로 많은 유학생들이 이곳에 와서 어학코스를 밟는다. 

플라테레스크 양식의 대표적인 예로 명성이 높은 살라망카의 대학교 정문 앞에는 학구적인 열기 대신 저마다 숨은 그림 찾기를 하려는 사람들로 늘 붐빈다. 심지어 대학의 도시답게 길 이름 마저도 책장길인 그곳에서 찾으려는 대상은 다름 아닌 해골 위의 개구리. 여기서도 스페인판 아무말 대잔치가 벌어지는데, 그 개구리를 찾는 학생은 학기 내내 치루는 시험마다 합격한다는 전설이 있다. 그런데 못 찾으면 졸업 못한다는, 이런 미신이 있다니 여기가 대학의 도시 맞나? 진작에 알았다면 내 인생이 달라졌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살짝 해 본다. 지금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어디 있냐며 열심히 행운을 찾는다. 세상이 하도 좋아져서 인터넷에서 미리 보고 온 분들이 알려준다.

하지만 재미로만 넘기기에는 표정에서 무언가 흘깃 읽혀지는게 있다. 늘상 바쁜 전쟁같은 하루, 끝없이 밀려드는 업무, 그물망처럼 얽혀졌는데 더 고독해진 모순적인 인간관계. 분명 살기는 편해졌는데도 정신과 감정은 더 피폐해진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사람냄새 진하게 나는 곳에서 사람답게 살고 싶은 갈증이 보인다. 인문학의 도시 살라망카는 개구리를 보고 어떤 행운을 가져다 주려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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